21세기 들어 한국사회에 가시적으로 나타난 여러가지 변화들 중에서 한 가지를 서강대 손호철 교수의 말을 빌어 꼽자면, 바로 '반공냉전세력의 결집'이다. 7,80년대에 가열차게 휘몰아쳤던 민주화투쟁 바람에는 애써 외면하거나, 몸을 사리고 있었거나, 이에 전면적으로 반대했던 사람들이 되려 형식적인 면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한 이 시점에서, 기본적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사상'투쟁에 나서고 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지나치다시피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도 그저 피식 웃는데, 그들은 도저히 생각이 다른 이들을 보며 미소지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자'라 칭한다. 그리고 자신들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라 몰아붙인다. 공산주의자는 그나마 점잖은 표현이다. '김정일 끄나불', '빨갱이', '친북좌경세력' 등 균형감각이 현저히 떨어지는 표현을 서슴치 않고 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사고는 이분법 내지는 흑백논리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내가 도덕적으로 우월한 '선'이나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고로 앞서 표현한 내용은 '자신의 주장'이나 '자신의 이념적 스탠스'를 나타내는 것일 뿐인데도, 그것을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거나 '사실을 표현'-법률용어로는 관념의 통지라고 한다-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런 사람들과 토론은 절대불가다. 도무지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근거로 내세운 팩트를 결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유치한 논법이 인식의 저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전제 - 공산주의자들은 역사를 왜곡한다. 소전제 - 누구(특정지칭인물)는 공산주의자와 같은 소리만 해댄다. 결론 - 누구가 하는 주장의 근거들은 믿을 수 없다. 그렇다. 이러한 사고방식 아래에서는 상대가 근거로 내세운 팩트에 대해서 같은 내용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진 자료로 반박하거나, 다른 팩트를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만이 보고, 듣고, 접해왔던 사실 모두를 '검증된' 근거삼아 똑같은 주장만 되풀이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때로 사람들이 대개 동의하고 있는 '공공선'이나 '사회정의'에 어긋나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기주장의 도돌이표 반복은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전혀 어긋남이 없기 때문에, 논리적 정합성을 위해 공공선이나 사회정의의 기준은 자신만의 관점에서 뒤틀어버린다. 이 경우 '인권'이란 개념은 오랜 기간 정립되어 왔고, 적어도 현대 입헌국가 아래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타협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특정시기에는 버려도 되는 가치가 되어버리고, 그 범위는 전 세계에서 한반도 정도로 축소되어 버린다. 예를 들면 그들은 북조선 김정일 정권 아래에서 벌어지고 인권유린의 실태를 근거삼아 '글로벌 스탠다드'- 국제적 인권 기준이다 -를 구실로 김정일 정권 척결을 주장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인권유린 범죄가 자행되었던 박정희 내지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하고, 동남아시아나 남미 아프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 범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특정시기 특정목표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도 인권도 모두 희생시킬 수 있다거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했다는 형용모순이 나온다. 아니면 그 불법의 질 정도를 따져 누구보다는 불법의 정도가 낮으니까 상관없다는 식으로 면죄부를 준다. 살인이 강간살인보다 죄질이 낮으니까 무죄라는 식으로.
이를 그냥 개그라고 봐야할까? 386 주사파가 모든 국가기구를 점령한 이 시기에서-그들의 표현을 빌었다- 역설적이게도 표현의 자유를 무한대로 누리고 계신 분들에게 되도 안 한 소리 그만하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그것의 수단인 '표현의 자유'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들의 퍼포먼스나 주장을 보고 그냥 피식 웃고 넘기는 게 나아보인다. 무엇이든 말할 자유가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말 못하게하는 데 작용한다고 해서 침묵이나 무시할 권리마저 포기할 필요는 없잖은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씨의 말을 빌어 그냥 '지적 마스터베이션'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나 자신도 그런 경향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항상 경계하고 성찰하자. 박정희 시대나 지금이나 언론환경은 별반 나아진 바가 없다며 '보도지침'을 거론한 어느 분의 댓글을 보며 든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