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멘토링(Mentoring)에 대한 이해가 점차 깊어져가고 있다. 기업체에서도 멘토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지만 교육계와 교회에서 가장 깊이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 멘토링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사람이 일대일 관계를 맺어 서로가 도움을 주면서 개인과 공동체의 목표달성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여 가는 과정을 일컫는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4장15절에 “일만 스승은 있으나 아버지는 많지 않다.”는 구절이 있듯이 젊은이들에게 정신적 영적 아버지 같은 관계를 맺어 그들을 사회와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 나가가는 일이 멘토링의 진면목이다.
그간의 우리 교육이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는 물론이려니와 기업이나 가정에서까지도 지식 전달의 수준에서 이루어져왔으나 멘토링 개념을 도입하게 되면 그간에 결여되어 있었던 인격적인 지도 양육에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 멘토링(Mentoring)에는 몇가지 용어가 있다.
첫째가 멘토(Mentor)란 용어다. 이는 인생의 안내자, 본을 보이는 자, 양육자 상담자, 사부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용어는 멘티(Mentee)란 용어이다. ‘도움을 받는 자’라고 이해 할 수 있다. 멘토링의 세계는 멘토와 멘티간의 깊은 인격적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그 구체적인 모습을 우리는 열두제자들을 3년간 양육하신 예수님의 삶에서 살펴 볼 수 있다.
3. B.C. 1250년 오디세우스 -로마식 이름은 율리시즈- 는 트로이 전쟁터로 출정하게 되었다. 전쟁이 언제 끝이 나 무사히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때에 율리시즈에게는 한 가지 염려스러운 바가 있었다. 그의 외아들 텔레마쿠스가 몸도 마음도 허약한 점이었다.
다음에 왕위를 이어줄 왕자가 그렇게 허약하다는 것이 전쟁터로 나가는 그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였다. 이에 그는 자기의 친구 멘토(Mentor)에게 아들을 제대로 양육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다. 친구 멘토는 현자로 알려진 훌륭한 스승이 될 자질을 갖춘 분이었다. 친구의 부탁을 받은 멘토는 텔레마쿠스를 양육함에 전심전력을 다하였다.
한편 트로이 전쟁터로 나간 율리시즈는 전쟁이 20년 넘게 길어지게 되고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고국으로 돌아오는 기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간에 멘토의 지도를 받은 텔레마쿠스는 심신이 강건한 건장한 용사로 변모하여 갔다. 후에는 한 나라를 이끌기에 넉넉한 출중한 인물로 성숙되었다. 그렇다면 스승 멘토가 제자인 텔레마쿠스를 어떻게 양육하였기에 허약하였던 그가 용사답게 자랄 수 있었을까? 이 점이 중요하다.
멘토가 텔레마쿠스를 길러낸 교육법에 따라 훗날에 ‘멘토링(Mentoring)’이란 교육 방법이 발전하게까지 되었다. 텔레마쿠스의 스승 멘토의 이름을 따서 멘토링 교육 방법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4. 스승 멘토가 제자 텔레마쿠스를 용감하고 지혜로우며, 왕으로서 손색이 없는 인물로 성장시켰던 비결이 그의 독특한 교육 방법 때문이었음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멘토의 교육 방법은 한마디로 ‘대화식’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사색을 하였다. 스승은 제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케 하며 뜨겁게 토론을 벌였다. 스승 멘토는 질문하고 제자 텔레마쿠스는 대답하였다. 스승은 제자를 마치 친구처럼, 동료처럼 대하며 둘 사이의 관계를 깊게 하였다. 가끔 스승의 질문에 제자가 대답을 하지 못할 경우는 그냥 건너뛰었으며 주변의 사물을 실례로 들어 설명을 하곤 하였다.
멘토가 텔레마쿠스를 지도함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논리적 사고, 철학적 깊이, 그리고 수학적 정확성이었다. 가끔 텔레마쿠스는 인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방황하고 흔들릴 때면 사부(師父)이면서 아버지 같고 친구 같은 스승 멘토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자신의 불안과 갈등이 사라져 버림을 느끼곤 하였다. 중요한 것은 이런 교육 과정을 통하여 텔레마쿠스가 인격자로, 용사로,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수준으로 성장케 되자 멘토는 과감하게 제자의 곁을 떠났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여 수행하고 그 임무가 완료되었을 때 미련 없이 떠나는 멘토의 모습에서 우리는 멘토링의 진수를 볼 수 있게 된다.
멘토와 텔레마쿠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활용하여 소개한 사람은 17세기 프랑스의 페넬롱(Fenelon)이다. 그는 루이 14세의 손자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자 미래의 프랑스 왕이 될 제자를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를 고심하다가 멘토와 텔레마쿠스의 경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는 1699년 당대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을 한 권 썼는데 그 제목이 ‘텔레마쿠스의 모험’이란 책이다. 페넬롱은 오늘에 이르러 번성하기 시작하는 멘토링의 사상을 최초로 전하여 준 사람이다. 페넬롱에 의하여 멘토는 지혜와 신뢰로써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멘토링에 대하여 학계에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니 그 시초가 1978년 예일 대학의 레빈슨 교수가 쓴 베스트셀러 ‘남자의 계절(the seasons of man's life)’이란 책이 출판되면서부터이다. 레빈슨 교수는 이 책에서 쓰기를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기로 들어가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멘토가 없음은 마치 어린이에게 좋은 부모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업에 성공한 많이 비즈니스맨들에게 지난날에 훌륭한 멘토가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지금 우리나리에 소개된 멘토링에 관한 서적으로는 하워드 핸드릭슨의 ‘철이 철을 날카롭게(요단출판사)’가 대표적인 책이다.
미국의 기독교에서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멘토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된 동기가 특이하다. 8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기독교계의 저명한 지도자들 중 일부가 부끄러운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충격을 받은 학자들이 이런 스캔들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들이 여러 가지 대안을 놓고 논의를 거듭한 결과로 멘토링을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만일 스캔들에 휘말렸던 당사자들에게 적절한 멘토가 있었더라면 이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멘토링은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멘토(Mentor)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삼아 멘티(Mentee)로 하여금 성공에 이르게 하는 능력과 확신과 잠재력을 개발하여 주는 두 사람 간의 관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도자 혹은 스승으로서의 멘토가 금전적 보상이나 어떤 대가를 바람 없이 제자, 혹은 도움을 받는 이인 멘티의 성공만을 유일한 보상이나 대가로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상에 나타난 가장 훌륭하였던 멘토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클린턴 교수는 멘토링을 짧게 정의하기를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들을 나눔으로써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종의 관계적 경험이다”라고 정의하였다.
6. 멘토의 영향력과 위력이 어떠한지에 대하여는 애브라함 링컨의 경우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링컨의 일생은 그야말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였던 삶이었다. 그러나 링컨은 그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실패를 넉넉히 극복하고 마침내 대통령 직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대통령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링컨에게 그런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링컨의 멘토였던 교사 그래함(1800~1885) 덕분이었다. 링컨은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에 겪었던 가난과 역경의 삶은 제쳐두고라도 여러 가지 실패를 경험하였다. 31세에는 사업에 실패하였고, 32세에 입법위원이 되는 데 실패하였으며, 34세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잠시 동안의 성공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해에 그의 애인이 죽었고, 36세에 자신이 신경쇠약에 걸려 고통을 겪었다. 38세에 대변인이 되는 데 실패하였고, 40세에 선거위원이 되는 데에 실패하였다. 43세에 하원의원이 되는 데 실패하였고, 50세에 상원의원에 또 낙선하였다. 이어서 56세에 다시 상원의원으로 출마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1860년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리고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이렇게 숱한 실패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왔을까? 그것은 그의 초등학교 시절 스승이었! 던 그래함의 격려와 위로 때문이었다.
링컨의 성공은 그의 스승 그래함의 멘토링 덕분이었다. 링컨의 경우야말로 멘토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본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