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묵은 체증이 싸악 가시는 듯한 글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괜히 억울한 심정도 들고 하여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댓글 달다 답장쓰기까지 하게 되네요.
문예창작과를 나온 저의 단짝 친구넘이 어느날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분포되어 있는
가톨릭 수도회에 입회하는 것이였습니다. 수도자가 되겠다고...,
그리고 신학공부를 하고 있는 넘이 있습니다.
언젠가 휴가나와서 저와 소주한잔 기울일 기회가 있었지요...,
물론 제가 지금 올리는 글은 종교인, 종교지도자 전체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흙탕물 튀기는 꼴의 극히 일부분만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친구넘의 이야기를 듣자니 저의 댓글에서처럼 벌어진 입을 다물수 없을 정도의
충격적인 사실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느 주교는 교황청에 얼마를 상납해서 주교가 됐고
어떤 새신부는 사명감에 열심히 동네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하려하는데
성당 주임신부의 너무도 큰 모순점을 발견하여
그 지역 담당 주교에게 면담을 했다 합니다.
자기가 신학교에서 배운대로라면 주임신부가 그렇게 하면 안되는것 아니냐고...,
주교 왈, "니가 뭘 안다고 그래? 가서 일이나 열심히 해!!!"
주교의그 말에 충격을 받은 신부는 자살을 하게 되었다라는 얘기...,
어느 신부는 원조교제 하다 들켰는데
신자들이 아무리 주교에게 항의를 해도 안먹히더라는 얘기...,
곧 팔이 안으로 굽어도 유분수였지요...
가난한 신자는 일요일날 성당가서 떳떳하게 주임신부와 악수도 못나누고
인사도 못하고 뒤로 살금살금 도망치듯 집으로 온다고 합니다.
돈 많고 그 지역 유지들하고 얘기하고 웃고 떠드는데
힘없고 빽없는 신자가 그 틈에 끼어 신부와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지요....,
휴~~~~
말 나온김에 저의 사생활이 노출이 되든 말든 한마디 더 하렵니다.
저는 현재 인구 약 25만명정도의 중소도시에 거주하고 있고
작은 라이브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하고싶은 노래를 부르며 카페를 운영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말씀드리고 한 인간의 허접스런 면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물론 실명이나 지역 이름, 등등은 비밀이죠.
안그러면 명예훼손으로 곤욕을 치룰테니까요...,
어렸을적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저는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성악이 뭔지도 모르는 넘이 갑자기 으리으리한 예고에 입학원서를 냅니다.
그러나 그 학교는 초등, 충등, 고등학교가 한 재단에 속해 있고
어렸을적부터 대학교수에게 레슨을 받고 같은 재단의 고교에
입학을 하기때문에 저같은 사람은 감히 근처에도 못가는 곳이기도 하죠
고교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학생들이 청소를 안하고
청소용역회사가 다 청소를 해주는 학교이니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재벌고교라고 해야 할지...,
어쨋거나 제가 좀 소질은 있어서였는지
무난하게 학교에 입학은 합니다. 그런데 한달 집 월세도 못내서 빌빌거리는 집안에서
레슨비가 우리집 월세보다 커서 레슨을 받지 못합니다.
결국 레슨한번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하고 꿈많던 학생은 자퇴를 하고야 맙니다.
그 순간부터 약 10년간의 몸서리쳐지는 방황과 좌절, 그리고 타락...,
결국 어느 업소에 있는 악기를 훔치면서 교도소와 인연을 맺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것은 제가 교도소에 들어가서보니 각 종교집회가 있었고
그 집회때 음악을 담당하는 재소자가 없어서
어깨넘어로 배운 피아노 실력으로 3대종교의 음악반주를 제가 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틈틈히 악대라는 보직을 얻어 꿈에도 하고 싶던 음악을 결국 교도소에서
하게 되더라구요...,
1년의 수형기간을 채우고 출소는 했지만 집에서든 친구든 저를 받아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또 죄를 짓고 15척 담장안으로...,
어쩌면 제가 자처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교도소에 가면 음악을 할 수 있기때문에...,
그래서 저는 일부러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자수를 합니다.
그리고 어느기간 살면서 역시 음악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이제 사회에 나가봐야 어디 정둘 곳 없고...,
사형안될 정도의 아주 큰 사건을 터트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면 오래오래 교도소에서 살면서 음악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절 보고 미쳤다고 하시겠죠?
어째 인간이 좀 잘못 됐다라고 하시겠죠?
하여간 그때 당시 삐뚤어진 저의 심정으로서는
그렇게 밖에 하고싶던 음악을 하지 못한 한을 풀 방법이 없었습니다.
3번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면서 천주교 봉사자의 도움으로
그토록 원하면 음악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고의로 사건을 저지르고 다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라이브 레스토랑에 취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노래를 하던 업주에게나 손님들에게 인정 받았습니다.
그러나 후회스러웠던 것은 전과자이기에 가요계에 데뷔를 한다해도
과거가 들통나 버리면 더 큰 상처를 받게되고 하염없는 나락으로 빠질것 같은 생각에
그냥 노래하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죽을 때까지 살기를 결심합니다.
그런데 저를 도와주셨던 천주교 봉사자분께서
제가 수형생활을 했던 교도소에 음악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고
저 역시 다 못갚은 죄값을 한다는, 신앙의 힘을 빌어 나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음악으로 위안을 주자는 그런 뜻으로 출소한 그 다음 해 부터
교도소 음악봉사자의 길을 걷습니다.
서울 살면서 현재 제가 사는 이 지역으로 매달 혹은 매주
무거운 키보드 짊어지고 악보가방 등등..., 차는 없고 택시와 기차를 이용해
머나먼 이곳까지 틈틈히 음악봉사를 다녔습니다.
제가 살았던 교도소...,
함게 고생했던 재소자들은 저를 보며 무한한 희망을 가졌다고 합니다.
나가서 재범하지 않고 잘 살아주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위로가 되었다고 하
더군요. 하여간 저는 그 일에 보람과 큰 행복으로 약 6년정도의 봉사를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 지역 봉사자들은 저를 밀어내기 위해 안깐힘을 썼고
그 와중에 받은 상처란.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한마디로 교도소봉사자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니
찌그러진 이 지역 봉사자들의 마음이 편할리 없지요...,
어쨋거나 열심히 하다 나중에는 아예 이곳으로 이사를 해서
봉사자단체 담당 신부를 더 많이 도와줘야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한달에 한번이 아닌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꼴로 아예 전문적으로
교도소 봉사에 나서게 됩니다.
물론 양평이나 미사리로 저녁에는 라이브업소에 출연을 했고
낮에는 교도소 봉사를 했습니다.
오갈데 없는 병든 재소자가 형집행정지로 나올때 사회복지 기관으로 연결을 해주고
교도소에 필요한 물품을 월급을 쪼개 구입해주고
돈없어 고생하는 재소자에게는 영치금을 넣어주는등...,
언젠가는 전 재소자 약 1200면을 대상으로 1,2부 나누어 노래자랑을 개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위의 일들은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진 천주교 측에서는
1원 한푼도 보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보조금이 나오긴 하지만 1년에 약 200만원 정도지요.
그런데 제가 1년에 교도소 봉사를 하면서 쓴 비용이 약 700만원 정도가 되더군요...,
말이 안되는거지요...,
이지역 봉사자 단체 회장은 그 중에서도 교회에서 나오는 공금을
영수증을 조작해서 횡령을 합니다.
재소자에게 주려 맞춘 떡 상자 중에 한두개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립니다.
또 교회공금을 지가 맘대로 쓰고 채워넣지도 않다가
총무가 장부가 이상하다 얘기 하면 길이길이 소리치고 날뛰고...,
그런데 어느날 그 회장이라는 여자가 우리나라 법무부에서 주는
교정대상을 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앙방송, 지역방송과 신문에도
보도가 되었던, 아주 명예로운 상을 탄다고 하더군요.
저는 한마디로 놀라자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공금회령하는 사실을 담당 신부에게 말을 해도 그냥 넘어가고
병신같은 신부새끼는 그냥 그렇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더군요.
그 회장이란 년은 고급식당을 하는데 신부나 주교를 잘도 대접하더군요...,
어쨋거나 말도안되는 그 상황에서 저는 법무부, 교도소, 담당신부에게
부당한 시상제도에 대해 항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교도소 서무과 과장을 찾아가
어떻게 그 여자가 공로상을 타게되는지 그 공적 사항을 보자고 했습니다.
물론 소형 녹음기를 가지고 들어가서 녹음을 했습니다.
현재도 그 테잎은 보관하고 있습니다.
서류상의 공적사항을 보니 참으로 기가 차더군요...,
위에 열거한 몇가지 제가 한 일이 둔갑을 해서 그 여자가 한걸로 되어버렸습니다.
서무과장에게 따졌죠...,
그 양반 한다는 말 "야, 너도 열심히 해, 상이란 원래 그런거야, 너도 상타게 해줄께...,"
"에이 씨팔..., 내가 상타려고 그러는 것 아닌데...,
일을 하지도 않은 사람을 관행으로 치부하고
교도소에 아부하는 인간순서대로 공적을 꾸미는걸 바로잡고 싶어서였는데...,"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관행을 담당 신부에게 건의 했습니다.
신부 왈, "너나 잘해..., 괜히 그런 문제로 내가 교도소에 항의를 하면 천주교에 먹칠하는거야."
아~~~ 정말 좇같은 세상이다...,
이런 정의를 부르짓는 신부새끼도 그렇고...,
저는 고아가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좃빠지게 신부옆에서 열심히 봉사를 했죠
미사때 반주는 물론이고 신부가 하고자 하는 일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교도소에 물품이 필요하면 월급쪼개 사서 주면서
내돈으로 산게 아니고 신부가 돈 줘서 산거라고...,
그렇게 한 단체의 장을 일으켜 세워줬습니다.
어느 추석 명절날 신부가 저에게 묻대요
명절날 뭐할거냐고...,
"아 예 그냥 집에서 쉴거에요"
신부가 사는 집은 내가 월세로 살던집에서 걸어서 5분거리 입니다.
신부집에 가는 길목에 저희집이 있었죠...,
명절날 와서 밥 한끼 먹으라 하지도 않대요...,
그 시간에 젋은 계집년들하고 술만 좇나게 푸고 다니면서...,
제가 만약 전과자가 아니였다면 아마 신부는 저를 후하게 대접했을겁니다.
하여간 부당한 관행에 의해 하지도 않은 공적을 거짓으로 꾸며낸 사실을
저는 대자보로 맞서게 됩니다.
교회도, 공무원도, 잘못된 관해에서 벗어나야 하며
특히 정의를 부르짖는 교회가 썩은 관행을 못본채 한다는 것은
크나큰 교회차원에서의 직무유기임을 대자보에 표현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이 지역 천주교회의 역적이 되었고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바위에 계란을 던졌으니 산산조각이 나는건 뻔한일이고...,
6년간을 오로지 갇혀사는 어려운 우리 이웃을 위해 한 일이
결국 내가 죽일놈이 된겁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저를 욕할때 당장 여기를 뜨고 싶었습니다.
더럽고, 치사하고,,,,
그러나 떠날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빚내고 대출받아 라이브카페를 시작합니다.
어렵게 마련한 라이브장비를 싫고 역전 광장에서 여려운 이웃을 위한 모금공연을 합니다.
신부, 주교, 그리고 나를 모함하던 신자들 보란듯이...,
카페를 오픈한지 이제 5년이 다 되어 갑니다.
과거는 과거이고 전과는 전과입니다.
그동안 전과자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속된 인간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술집하는 사람이지만 거리에 나서면 서로 인사해줍니다.
인정해 줍니다.
그런 보람으로 살기는 삽니다만 신앙안에서 받은 상처,
신부에게서 받은 상처, 아마도 죽을 때 까지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겁니다.
나중에 하느님이 보상해 줄거라고?
그런 말 하려면 당장 이 글, 비추천하고 나가시오~~~!!!
한번은 이 지역 어느 동네 신부가 신자들하고 여럿이 왔대요
그리고 신자들은 열심히 굽신거리며 신부를 보필하고
그런데 그 신부가 자기가 노래좀 하자 하대요
"죄송합니다. 여기는 손님이 노래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반음식점에서
손님이 노래하는 것은 불법입니다."라고 했죠
그 신부 왈, "아니 내가 곧 법인데 누가 그래? 엉?"
???????????????????????????
"에이! 씨발새끼..., "
속으로 욕부터 나오데요
지가 노래하려면 노래방을 가던지 아니면 단란주점이나 룸을 가던지
왜 정숙하게 운영하는 카페에서 지 성당에서 하던 버릇을 해대는지...,
신자들은 지네 성당 신부 노래안시켜 준다고 난리대요
나중에 술값계산 할때는 돈을 카운터에 뿌리더군요....,
묵묵히 한장 한장 피같은 돈을 주워들었습니다.
그리고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 씨발새끼 투덜투덜대며 가대요...,
-----------------------------------------------------------------
정중한 언어, 상스럽지 않은 단어로 표현해야 됨을 알지만
속좀 후련하려고 못하는 욕도 썼습니다.
운영자께서 제 글을 삭제하시면 욕부분만 빼고 다시 올리겠습니다.
현재 어렵게 어렵게 출반했던 저의 독집 복음성가 마스터 필름도 불태워버리고
"그저 착하고, 남에게 피해 안주고 사는게 최고의 종교다"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여보란듯이 잘 살기 전에는 절대 떠나지 않을겁니다.
아무쪼록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꾸 ~~~~~~~~~ 벅.
# 이제 봉사활동은 절대 안할겁니다.
내가 있는 이 자리 열심히 지켜내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비씨파크 주식회사, 대표이사 : 박병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박병철
사업자등록번호 : 114-86-19888 |
본사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73길, 42, 1307호
전자우편 : master@bcpark.net |
(전화전 이용문의 게시판 필수)
전화: 02-534-982구(09:00~18:00) |
팩스: 02-535-155구 |
긴급: 010-9774-988삼
ㆍ저작권안내 : 비씨파크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에 보호를 받습니다. 단, 회원들이 작성한 게시물의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비씨파크에 게재된 게시물은 비씨파크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게시, 판매, 대여 또는 상업적 이용시 손해배상의 책임과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ㆍ쇼핑몰안내 : 비씨파크는 통신판매중개자로서 상품 주문, 배송 및 환불의 의무와 책임은 각 판매 업체에 있습니다.
Copyright ⓒ 2000-2026 BCPARK Inc.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