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김수현 드라마의 할리우드버전 같은 영화이다. 단정적이면서도 톡톡 튀는 대사도 있고,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 흔적도 역력하다. 한마디로 디테일이 살아있다. 환갑이 다 된 여주인공 다이안 키튼에겐 홀딱 반해주는 서른 여섯 살 꽃미남도 있고, 육십이 넘도록 꾸준히 행해온 엽색행각(?)을 접을까 말까 갈등하는 또래애인도 있다. 감독과 작가가 나이든 여자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아니나다를까, 각본과 연출을 맡은 낸시 마이어스는 오십대 여성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화두는 ‘쿨하게’라고 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젊은이들 또한 쿨하기 짝이 없다. 제 남자친구와 엄마 사이에 떠도는 이상기류를 눈치챈 딸은 그 즉시 쿨하게 관계를 정리한다. 생일맞이 파리여행에까지 동행한 꽃미남청년 키아누 리브스 또한, 다이안 키튼이 사랑하는 건 잭 니콜슨이란 걸 느끼자 쿨하게 작별을 고한다.
하지만 소위 구세대들은 겉으로는 쿨한 척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속속들이 쿨해질 수는 없다. 삼십이 안된 여자들과 연애만 하며 나름대로는 화끈하게 살아온 잭 니콜슨은 난생처음 맞닥뜨린 참사랑 앞에서 갈팡질팡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희곡작가로 깔끔하게 자기관리를 해온 다이안 키튼 또한 봇물 터지듯 솟구치는 배신감을 어쩌지 못해 시도 때도 없이 왕왕 울어댄다. 그리고도 성이 안 차 잭 니콜슨이란 인물을 한껏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해 무대에 올리기까지 한다.
사는 것도 웬만큼 자리가 잡히고 아이들도 어지간히 크고 나면 옛친구들 생각이 간절해지게 마련이다. 남편이나 자식에게도 내놓기 어려운 속내를 후련하게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치해도 상관없고 끔찍해도(?) 상관없다. 무슨 얘기든 이상하리 만치 자연스럽게 풀려 나온다. 도무지 금기라는 게 없다.
이 영화는 이제는 중년아줌마가 된 소싯적 친구들끼리나 할 수 있을 법한 얘기를 거침없이 떠벌린다. 속은 그대로인 채 거죽만 늙은 아날로그세대의 실현불가능한 꿈을 당당하게 재현해 보인다. 그 전령으로 선택된 잭 니콜슨과 다이안 키튼은 맡은 바 임무를 거의 완벽하게 해냈다. 둘의 감정이 무르익는 장면들은 젊은 연인들의 그것 못지 않게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렇게 당당하고 아름답던 다이안 키튼도 키아누 리브스 곁에서는 빛이 바래고 만다. 미남청년의 무조건적인 연모도 외양에 드리운 세월의 더께(주: 몹시 찌든 물건에 더덕더덕 달라붙은 거친 때)를 걷어내지는 못한다. 사람이 촌스러운 탓인지, 공연히 민망해지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친구들끼리 싱겁게 그려봤던 그림이 막상 눈앞에 펼쳐지니 서글프기 그지없다. 할 수만 있다면 ‘사십 오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매겨 여성전용관에서만 상영하게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