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이런 기사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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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로잔치에 참가한 동네 어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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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김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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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싱그러움이 물씬 풍기는 하루입니다. 아파트 뒷편의 아카시아 나무에는 하얀 아카시아 꽃이 피어 온 동네가 향기로 진동합니다.
열흘 전부터 아파트 관리실 입구에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어있었습니다. 내용은 '경로잔치 및 주민화합 잔치'였지요. 참 오랜만에 마음에 새겨보는 문구라 어떤 행사가 될까 궁금했습니다.
우리 동네 통장님이 며칠 전부터 행사준비를 도와줄 것을 부탁한 터라, 저 역시 무료봉사를 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어제(6일)도 하루 온종일 아주머니들은 채소를 다듬고, 썰고, 볶고 하며 몇 가지 김치를 담그느라 바빴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려야 할지 몰라 전 그저 콩나물 다듬는 것과 그릇들을 씻는 일을 했습니다. 몇 가지의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할 일은 많이 남은 것 같았지만 다들 잘 하는 분들이라 차라리 제가 빠지는 게 낫다고 생각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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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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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김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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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은 아침부터 바빴습니다. 이번주에는 행사가 많아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밀린 빨래며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놀이터에서인가 아파트 앞 가게 할머니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왔습니다.
아직 행사가 시작되려면 두 시간이나 더 있어야 했지만 벌써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평소 가게 할머니는 화통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을 알았지만, 마이크를 잡고 직접 분위기를 띄우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지요.
다른 아주머니들이 일찍부터 나와 바쁘게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이상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던 일을 대충 마무리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어린시절 고향마을에서도 잔치가 열리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잔칫집에서 허드렛일을 거들었습니다. 그때 잔치집 마당 한 구석에 큰 천막을 친 후 오는 손님들에게 얼큰한 쇠고기국밥 한 그릇을 대접하던 게 떠올랐습니다.
어머닌 등교하는 저에게 학교 마치면 누구네 잔칫집으로 오라고 일렀습니다. 어머니의 말대로 하교 길에 잔칫집으로 가면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어느새 어머니는 '이리오라'고 손짓을 하십니다.
어머니는 제게 쇠고기국밥을 가득 담아 내놓으셨습니다. 고기만 골라 한 국자 더 넣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한 그릇 후딱 먹고 일어서려는데 어머니는 수육하고 떡이 담긴 작은 봉지하나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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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9구급차가 왔어요. 다행히 다친 할머니에게 큰 일은 없었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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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김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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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놀이터에는 그 때 그 시절 보았음직한 그런 천막들이 그늘을 만들고, 그 아래로 어쩌다 한 번 볼까 말까한 오래된 상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번 잔치를 위해 통장님이 동사무소에서 빌려온 것들이라 했습니다. 어제 다듬기만 했던 재료들은 어느새 반찬 통에 음식이 돼 담겨 있었습니다.
좀 이른 감은 있었지만 이것저것 준비한 것들을 하나씩 상에 놓기 시작했습니다. 몇 종류 안 되는 듯한 음식들은 가짓수도 많고 맛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기본 준비가 끝나자 옆에서 일하시던 한 아주머니가 잡채와 수육을 담아와 한 번 먹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안 드신 것이라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배도 부르니 힘을 내서 더 열심히 음식을 가져다 날랐습니다. 어느새 할머니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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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쪼그리고 앉아서 먹는 비빔밥이 꿀맛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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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김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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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많이 남아서 어른들이 적게 오시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정해진 점심시간이 되자 많은 동네 어른들이 오셨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새댁, 이것도 좀 주고, 저것도 좀 갖다 주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필요한 것들을 쟁반에 담아 정신없이 날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막 중앙에 세워둔 막대기둥이 바람에 힘없이 넘어지면서 할머니 한 분에게 떨어져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순간,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많이 다치지는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119구급차가 왔습니다. 병원이 가까이 있어 그럴 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가셨고, 통장님이 따라 가셨습니다. 잠시 분위기가 썰렁해지긴 했지만 다른 분들을 위해서 다시 음악을 틀었고, 이어 할머니들은 숨은 노래 실력을 발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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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이 고생하셨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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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김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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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겨운 한마당이 이어지는 동안, 몇 시간이나 음식을 담고 나르던 아주머니들도 쪼그리고 앉아 비빔밥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그 틈에 끼어 저 역시 실컷 먹었습니다. 그렇게 여럿이 앉아 밥을 먹으니 꿀맛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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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통장님 노래 참 잘 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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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김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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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우리 구의 시의원님, 동장님, 각계 단체장의 분들이 오셔서 음식도 먹고 노래도 한 곡 부르셨습니다. 할머니들과 함께 그 분들도 어울려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오후를 훌쩍 넘었습니다. 다소 지친 표정들이었지만, 한 사람이 빠지면 그만큼 남아 있는 사람들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에 끝까지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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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댁아, 잘 묵고 간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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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김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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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훨씬 많이 오셨다"고 통장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음식도 많이 하고, 맛도 있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들은 일부러 저희들이 일하고 곳으로 와서 "잘 먹고 잘 놀다 간다"며 한 마디씩 하고 가셨습니다.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런 모습에 말 한마디에 피곤함은 싹 사라졌습니다. 놀이터를 치우고, 그릇들을 씻은 후 구분해 담아 관리실 창고에 넣어두니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되었습니다.
그 쓰러졌던 할머니도 다행히 괜찮다고 했습니다. 정말 무엇보다 행사를 무사히 잘 치렀다고 생각하니 너무 흐뭇했습니다. 하루 종일 고생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남은 음식을 조금씩 나누어 집으로 들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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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동의 동장님 인사도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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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김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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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도 일일이 챙겨주십니다. 저도 이 동네에서 이제 한 가족이 되어가는구나 싶어 마음이 뿌듯해졌습니다. 같이 지내는 동안 저 역시 이 분들과 친하게 지내며 이웃의 정을 나누며 살고 싶었거든요.
모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경로잔치에 옛 추억을 느껴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우리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무쪼록 건강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셨으면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내내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출처: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