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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묘비

 




                                  墓地頌 


                                                                         - 고은
 
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나 그대 자손은 차례차례로 오리라.
지난밤 모든 벌레울음 뒤에 하나만 남고 얼마나 밤을 어둡게 하였던가.
가을 아침, 財寶인 이슬을 말리며 그대들은 잔다.
햇빛이 더 멀리서 내려와 잔디 끝은 희게 바래고
올 이른 봄의 할미꽃 자리 가까이 며칠만의 산국화가 모여 피어 있구나.


그대들이 지켰던 것은 비슷비슷하게 사라지고 몇 군데의 墓碑는 놀라면서 산다.
그대들이 살았던 이 세상에는 그대들의 뼈가 가마귀 깃처럼 운다 하더라도
이 가을 진정한 슬픈 일은 아니리라.
오직 살아 있는 남자들에게만, 아니 참다운 남자에게만
가을은 집 없는 산길을 헤매이게 한다. 절도 없어야 한다.


그대들은 이 세상을 마치고 작은 祭日 하나를 남겼을 뿐
옛날은 이 세상에 없고 그대들이 다만 옛날을 이루고 있다.
어쩌다, 잘못인지 노랑나비가 낮게 날아가며
이 가을 한 무덤 위에서 자꾸 저 하늘에도 무덤이 있다고 일러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데 그대들은 이 무덤에 있을 뿐 그대 자손들은 곧 오리라.


고은 시전집 1, 民音社



늘푸른가슴
2004-05-01 12:45:04
977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양영모 '04.5.2 8:45 AM 신고
    :-)*배경과 잘 맞아떨어지는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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