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게시물을 올릴수있는 게시판입니다.
  • 유년추억
  • 학교생활
  • 입시준비
  • 대학생활
  • 군생활
  • 알바생활
  • 취업준비
  • 직장생활
  • 원룸생활
  • 연애중
  • 결혼준비
  • 집안살림
  • 자녀교육
  • 창업준비
  • 이민유학
  • 노후생활
  • 전체보기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

 


영화 : 그리스도의 수난



교회력으로 지금은 사순절(四旬節)의 중반을 넘기고 직접적인 수난주(受難週間)에 임박해 있다. 이 기간 동안 교회들은 특별새벽기도회를 열거나 한끼씩을 금식하므로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고난의 의미를 새기므로 경건 생활에 집중시키려고 한다. 때를 맞추어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이라고 하는 영화가 제작되어 상영되면서 미국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는 수난주간에 맞추어 상영되어 많은 성도들이 관람하고 은혜를 받는 것 같다.

이 영화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는 단순한 성경 기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침울한 가운데 진지하다. 이 영화는 그리스도의 수난 중에서 마지막 하루에 집중하고 있다. 그 날의 고난을 재현하는 일에 있어서 고난의 현장과 장면을 최대한 살렸다. 그래서 관람객으로 하여금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너무 진지하고 잔인한 장면들 때문에 영화를 보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살인자는 이 영화를 보고 회개하였다고 한다.

이 영화가 한국에는 아직 상영되지 않았지만, 몇 가지 지적을 하려고 한다.
첫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성경의 원작을 살리려 노력하였다 점에서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성경을 바탕으로 한 종교 영화는 여간해서는 흥행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적인 틀, 즉 교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재정적인 뒷받침이 약하기 때문에 훌륭한 작품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은 과감한 작품이다. 만든 감독이나 배우들도 스타들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하였다. 배우들에게 아람어와 라틴어 대사를 하게 하였고, 복음서의 내용을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몇 가지 비판을 할 것이 있다.
첫째는 영화의 폭력성과 잔인성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건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증인들의 온갖 음모와 증거 앞에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어린 양(사 53장)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수난을 받는 많은 장면들이 너무 잔인하다. 그리스도에게 가해진 그 날의 끔찍한 수난은 영화보다 더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잔인함을 그대로 노출한 것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시카고 선타임스의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의 등급에 대해 언급하며 폭력의 정도만 따진다면 R등급 대신 NC-17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종교적인 드라마보다 스플래터(사지를 절단 내는 잔혹 공포극) 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 예술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좋겠지만, 하지만 이 영화는 수많은 기독교인 관람객을 동원하여, 순진한 기독교인들에게 폭력을 조장한다. 이것은 장사(商人)들이나 하는 짓이다. 어떻게든 관람자에게 폭력을 극대화시켜 미화하려고 하는 것이 장사치들의 속성이다. 극에 달하는 폭력이 삽입되어 공포를 일으켜야 좋은 영화라고 하는 이상한 등식(?)이 이 영화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 상업을 목적으로 한 영화의 한계이리라.

두 번째는 기독교의 본래에 대한 오해 소지이다. 이 영화의 장면들, 즉 의상이라든지 상황 설정이 A. D 30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서 고증(考證)을 하였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로마카톨릭적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마리아의 의상은 수녀들의 의상과 같다. 또한 마리아의 회상 장면에서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나 예수의 발에 입맞추는 장면들은 지극히 로마 카톨릭적이다. 또 형(刑)을 집행하는 백부장이 창을 찌를 때 흩어뿌려지는 피뿌림을 받고 회개하는 듯한 장면은 성경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로마카톨릭교회에서 말하는 성혈(聖血) 교리와 적합하다. 작품을 만든 멜 깁슨이 로마카톨릭 신자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로마카톨릭교회 입장에서 볼 때, 예수의 발에 입맞추는 것이나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 피뿌림과 같은 장면들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로마카톨릭교회가 초대교회이며 성경적이다"고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간과하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수난을 전파하여 해이해지고 있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을 재무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로마카톨릭교회를 전파하고 있는 영화이다.
기독교의 복음을 장사를 위하여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교묘하게 바꾸는 사탄의 전술에 속아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셋째는 영화라고 하는 것이다. 계시의 말씀보다 앞장 설 수 없다. 성경을 읽는데 있어서 이해를 돕는 일종의 시청각 자료로 생각해야 한다. 성경이 알려주는 것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실천이다(마 10:45, 요 10:11, 1513).

넷째는 이 영화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강조되고 있지 않다. 기독교의 복음은 수난과 부활이 항상 함께 강조되어 왔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 부활을 강조하고 있다(행 2:32, 36, 3:14-15). 이 영화에서는 제목 때문인지는 모르나 부활은 영화 전체 2시간 중에서 1분정도로 그것도 이상하게 처리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기독교에 있어서 성도들의 부활이라고 하는 미래적 소망과 직결하고 있음을 간과하면 안된다. 솔직히 말해 부활이 없는 수난은 의미가 없다. 부활이 없는 수난은 복음적이지 못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그리스도의 수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뺀 폭력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리스도의 수난은 죄인들의 죄를 위함이었다"라고 하는 위대한 메시지가 빠져 있었다(행 3:13-14).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수난은 그 자체로 무디어진 성도들을 깨우고 은혜를 받게 하며, 죄인들을 회개케 하는 위대한 복음이다. (2004. 3. 28)
이현상(lhsab)



written by (manma200)
2004-04-23 06:16:18
1341 번 읽음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캐시선물





365ch.com 128bit Valid HTML 4.01 Transitional and Valid CSS!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