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가 진보인가 - 민주노동당 집중해부 (1)
신지호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진보정당의 원내진입은 한국 민주주의 성숙의 바로미터
민주노동당이 표방하는 진보의 구체적 내용은?
이번 17대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진보정당을 표방한 민주노동당의 약진이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민주노동당은 이승만 정권 시절의 진보당 이래 40여년 만에 원내진출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역감정에 기초한 구태정치가 노선과 정책에 의한 새로운 정치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까지 본격적인 진보를 표방한 정당이 원내에 없었던 점을 감안할 때, 진보정당의 원내진입은 한국 민주주의 성숙의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간의 관심에 비추어볼 때, 민주노동당의 실체는 일반 유권자들에게 깊이 있게 알려지지 못하였다. ‘부유세 신설, 서울대 폐지’ 등 17대 총선의 핵심공약은 언론매체를 타고 그런대로 유권자들에게 알려지고 있으나, 민주노동당이 표방하는 진보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유권자는 드물다. 한 정당의 지향과 목표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은 강령이다. 이에 민주노동당 강령의 분석을 통해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파악해 보기로 한다.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회주의사회 건설이다. 먼저 불필요한 오해를 예방하기 위해 이 글의 목적이 매카시즘에 기초한 이른바 ‘색깔론’의 제기와 무관함을 밝혀둔다. 민주질서를 파괴하고 폭력혁명을 기도하지 않는 한, 사회주의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생각이다.
먼저 민주노동당이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있음은 강령의 여러 구절을 통해 확인된다. 현재의 상황을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약육강식의 사회,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상실의 세상”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비극은 “만물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그 결과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가야 한다고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새 세상’이란 어떤 사회인가? “자본주의의 질곡을 극복한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체제”이다. 이 체제의 구체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소유권의 제한과 생산수단의 사회화”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나 소유분산이 아니라 사회적, 공공적 소유의 지배적 지위를 확보하는 재벌해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주장이다.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면 “공적 기금을 활용해 강제로 총수 일족의 지분을 유상환수”하여 재벌을 해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통신, 운수, 병원, 학교 등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으로 전환”시키고 “농지와 소규모 생활터전용 소유지를 제외한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는 국공유”로 전환시켜 사회적 소유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 조절을 우위에 두고 시장을 활용”하는 경제운영방식이다. “국민경제를 기획하고 사회적으로 조절하는 경제정책위원회를 창설”하는데, 이 위원회는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의 대표를 중심으로 하고 정부와 기업 경영자 대표가 참여하는 형태로 구성”된다.
이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물론 “지난날 국가사회주의 사회의 형식적 국유화의 한계를 거울삼아 시장적 요소를 적절히 통제 활용”하겠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사회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나,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라는 대목에서 확인되듯이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는 어떤 사회주의인가? 계획 대신 사회적 조절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였으나, 시장조절을 경제운영의 부차적 메커니즘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과거 동구권의 일부 국가에서 출현하였던 ‘시장사회주의’나 현재 중국의 ‘사회주의시장경제’보다 덜 시장 친화적이자 더 계획 친화적인 체제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이념을 사회민주주의라 이해하는 일부의 생각은 잘못이다. 실제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보란 본시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며, 따라서 역사발전의 흐름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이 과연 이런 기준에 부합되는 진보정당인지 의문이 든다. 70여년에 걸친 오랜 실험 끝에 결국 인간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기초한 계획경제’를 한국사회에 재현시키는 것이 과연 진보인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는 점에서 ‘공산당 선언’에서 맑스가 구사했던 ‘반동적’이라는 표현이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민주노동당은 이제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진보세력에게 강령은 금과옥조(金科玉條)다. 더군다나 이념, 정책정당을 표방하고 나선 민주노동당에게 강령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소중한 문건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강령의 홍보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 대신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식의 대중유인을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영화인들의 지지선언을 이끌어내 한층 고무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진보정당의 모습과 거리가 있다. 그토록 비판하던 보수정당의 이미지정치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진보라는 애매하고 불투명한 개념 뒤에 숨어 자신의 참신성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지향하는 사회가 무엇인지를 당당하게 밝힘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고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라고 외치던 기백은 어디로 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