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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조선 김성현기자와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의 글

 


신문이나 방송등의 미디어 회사들이 인터넷 미디어 산업에 뛰어들면서 인터넷 미디어 회사를 독립적인 자회사로 만드는데, 이 과정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과 조화와 비슷한 경향을 띄게 됩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젊은 기자 시각에서 나온 글과 사장의 시각차이가 무엇이 있는지 염두해두면서 읽어보시면 더욱 재미있을겁니다. 게다가 이런 조선일보 내의 변화가 시대변화에 대해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해서 읽어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또한, 심리적으로 용기를 북돋아주는 표현을 쓴것을 간파하고 읽어보면 게임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글속에 숨겨진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세상에 더 많습니다. 그래서, 보수와 거짓이 항상 이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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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월갑조선 편집장께.


작년 여름 휴가를 이용해 편집장의 ‘대사건 대추적-대폭발’을 읽었습니다. 동네 헌 책방에서 발견하곤 반갑게 집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980년 광주부터 1985년 2·12 총선, 1987년 6월 항쟁을 다룬 편집장의 취재기를 읽으며 저는 묘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특히 생생한 취재를 통해 ‘선명 야당’이던 신민당의 약진을 중산층·20~40대·아파트 주민·고학력자의 지지 때문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한 구절에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아직 푸르렀던 1980년대 편집장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발로 뛰면서 쓴 기사에 대한 자긍심이 어떤 것인지 책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편집장의 글을 보면서 끄덕였던 고개를 언제부턴가 가끔씩 설레설레 젓고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첫 계기는 ‘남북통일은 평양 주석궁에 국군의 탱크가 진주할 때 완성된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사실이 정의와 국익을 구현하려는 것이지 정의가 사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편집장의 언론관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저는 그 글을 보며 의아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글은 사실이 아닌 의견, 설명이 아닌 주장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편집장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보면서도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2002년 ‘전투적 우파에의 기대’에서 “한국의 우파는 이제 전투적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지요. 사회 일각에 퍼지고 있는 친북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지만 “헌법 수호기능을 총동원해 반란을 저지하는 행동으로 나서야 하며 지금부터 그런 동원력을 준비할 때”라는 구절은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일부 전·현직 대통령에 대해 이미 ‘친북 좌파’ 의혹을 제기하셨기에 그 우려는 더해갔습니다. “국가와 헌법,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역 독재 정권에 대해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군인도 포함된다”는 글에서 기자가 아닌 시민운동가의 모습이 자꾸 연상되는 것은 저만의 기우(杞憂)일까요.


작년 말 편집장께선 홈페이지에 “탄핵 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야3당의 합의만 이뤄지면 된다. 이를 만들어낼 인재는 없는가”라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뒤 한나라당이 조순형 대표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대신 개헌 등을 조건으로 다는 건 어떨까하는 이야기가 “시중에서 많이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불특정인을 취재원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주의를 거의 매일 받고 있는 저로서는 이처럼 아찔할 정도의 이야기가 ‘시중’을 근거로 작성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기자 역시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언제든 자유롭게 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실리는 글의 성격은 엄격하고 정밀해야 하는 기사와는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서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가운데 일부는 기자로서 쓸 수 있는 한계를 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특히 언론의 메커니즘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독자들은 편집장의 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이 같은 의견을 곧바로 조선일보의 공식 입장과 등치시키도 합니다. 편집장께서 회사와 사회에서 차지하고 계신 비중이 결코 적지 않기에 이 후배는 때때로 곤혹스러움에 빠지기도 합니다.저는 작년 영화 ‘황산벌’을 유쾌한 웃음과 씁쓸한 감정을 동시에 갖고 보았습니다.


코미디가 ‘역사의 희화화’를 피할 수는 없지만,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포장할 수도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선 “한국사의 가장 비장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파괴하고 우스개로 만든 비(非)국민적, 반(反)역사적 행태” “민족사적 범죄”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셨습니다. ‘한국사의 로마는 신라’라는 평소 편집장의 지론을 알고 있기에 역사에 대한 논쟁을 감히 펼칠 생각은 없지만, 글을 읽으며 저는 최소한의 유머를 불허하는 완고한 기성세대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희극이란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천하고 어리석으나 사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소설의 한 구절을 영화에 대한 변론 삼아 뒤늦게 인용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보수의 갈 길에 대한 편집장의 견해에 작은 이견을 적어봅니다. 저는 산업화와 근대화의 혜택을 사실상 가장 많이 누려온 20~30대가 그 공과(功過)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있다는 주장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최근 자주 회자되는 ‘보수의 위기’를 더 보수적인 방식으로 돌파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유보적입니다.


지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저는 사건 기자로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촛불 시위’를 수 차례 취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부 주최자들은 ‘반미’나 ‘친북’을 조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과격한 퍼포먼스를 벌였으며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조금 더 균형 있는 한·미 관계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시위를 복잡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저는 보수가 소위 ‘개혁’이나 ‘진보’에 대해 더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내 선·후배들도 이 같은 주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보수가 자신의 가치를 더 벼려서 공세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인 뒤 자정(自淨)해야 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편집장께서 강조하셨듯 기자가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인 이상,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초조하더라도 시국을 끈기 있게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사회를 갈갈이 찢고 있는 ‘이분법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고난의 현대사를 묵묵히 지켜온 조선일보 80여년 역사를 손쉽게 평가절하하고 매도하는 ‘철부지’들이 적지 않은 지금, 이 같은 글이 그들에게 한번 더 마구잡이로 악용되지 않을 지 적지 않은 걱정이 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시점에서, 편집장의 글을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습니다. 막 6년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후배의 용기로 여겨주십시오. 봄이 왔는데도 아직 춥고 탁하기만 합니다. 편집장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김성현·인터넷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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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계속 되고 있다”
 
  김성현 기자의 글을 유럽 여행 중에 읽었습니다. 고마운 글이었습니다. 제가 쓴 글을 헌 책방에서까지 찾아내 꼼꼼히 읽어주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조선일보-월간조선 기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민과 불안들을 핵심적으로 제기한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성현 기자는 제가 1980년대에 썼던 기사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라고 좋게 말해주었고, 최근 개인 사이트에 올린 저의 글들을 ‘완고한 기성세대의 이미지’라고 비판하면서 ‘기자는 관찰자’여야 하고 ‘소위 개혁이나 진보에 대해서 더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저의 행동논리를 결정하고 있는 상황인식의 바탕은 이러합니다.
 
  “남북한 무장대치상황의 본질은 민족사적 정통성과 삶의 樣式(양식)과 선과 악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국가공동체는 主敵(주적)을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국민의 자격을 갖고 살기 위해서는 김정일 정권과 그 추종세력을 敵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무를 집니다. 기자는 대부분의 사안에서 관찰자여야 하지만 김정일 세력에 대해서는 관찰자로서만 남아 있을 특권이 없습니다.
 
  월간조선의 두 기자(金容三-金演光)는 탈북하여 중국에서 숨어 지내던 세 명의 납북어부들을 관찰(취재)하다가 그들을 아예 조국으로 데려와버렸습니다. 두 기자의 행동은 언론의 正道(정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언론의 精髓(정수)를 보여준 것입니다.
 
  김성현 기자의 눈에 제가 ‘완고한 시민 운동가’로 비쳐지도록 한 글들은 거의 전부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에 대한 경우에 한정됩니다. 이 경우에도 저는 ‘신념이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李穗根(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기사를 비롯하여 제가 썼던 많은 용공조작 폭로 기사가 그런 사례일 것입니다.
 
  오늘날 조선일보-월간조선의 기자됨은 고통이자 영광이고 행운입니다. 세계 언론사상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지난 85년간 해왔던 것과 같은 비중의 역사적 업적을 남긴 예는 없을 것입니다. 나라를 잃었던 일제시대 조선 동아가 우리의 정부였습니다. 정부가 민족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두 신문이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민족지인 것입니다. 민족의 고민을 조선일보의 고민으로 끌어안고 민족과 함께 상처 받고 민족과 함께 일어섰다는 점에서 민족지인 것입니다.
 
  李承晩(이승만)에서 全斗煥(전두환)까지의 권위주의 정권 시절 조선 동아가 굴종했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만큼 천박한 사실왜곡은 없습니다. 김성현 기자를 비롯한 젊은 기자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언론자유는 1987년 6·29 선언 이전에 일했던 기자들이 독자들과 함께 싸워서 얻어낸 것입니다. 그렇게 쟁취한 언론자유를 공짜로, 그것도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쓰고 있는 것이 선동기관으로 전락한 지금의 어용방송, 친북언론들입니다.
 
  조선일보, 월간조선, 그리고 저는 현존 권력과는 긴장관계를 지나간 현대사에 대해서는 긍정적 시각을 늘 유지해왔습니다. 국가공동체의 가치관인 자유민주주의와 민족문화를 수호 계승 발전시키고 조선일보의 언론정신을 이어가는 것-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이러한 민족사적 짐의 무게 때문입니다.
 
  저는 김성현 기자의 글에서 “소위 ‘개혁’이나 ‘진보’” 라고 표기한 것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한국의 언론이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과오는 反民族-守舊(반민족-수구)세력인 김정일과 그 추종자들을 ‘진보’라고 추켜주고, 세계사적인 진보를 이룩한 한국의 정통주류세력을 ‘守舊-보수’라고 격하하는 용어선택일 것입니다.
 
  기자들은 그들을 ‘친북’ ‘좌익’이라고 정확하게 규정 용기가 없으니 그들이 불러 달라는 대로 김정일의 전위대 한총련까지도 ‘진보’라고 표기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피아식별 기능을 마비시킨 기회주의의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습니다.
 
  언론이 씌워준 ‘진보’라는 탈 뒤에 숨어서 前근대-守舊-親김정일 세력들이 벌이고 있는 불법소요는 이제는 ‘진보적 행동’이 되어 법망까지 피해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성현 기자의 사려 깊은 표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단체가 ‘반역혐의자’ ‘민주인사’라 미화하고 그에게 ‘안중근 상’을 줄 수 있었던 것도 언론이 이들을 ‘진보’라고 격려해왔기 때문입니다.
 
  기자의 정확한 용어 선택은 독자들이 상황을 직시하도록 해주는 핵심입니다. 청와대와 국회까지 옮기는 遷都(천도)를 盧武鉉(노무현) 측이 주문하는대로 ‘행정수도 이전’이라고 써주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수도이전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과 글로써 먹고사는 기자들이 좌파 선동가들의 말장난에 넘어가 正名(정명)의 문법을 버림으로써 국민들의 판단력을 흐려버린 과오는 강제된 ‘천황만세!’보다도 더한 것입니다. 기자도 이념으로 무장해야 좌익 선동의 실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理念(이념)이란 ‘이론화된 신념’이니까요.
 
  김성현 기자는 예술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저질 코미디인 ‘황산벌’에 대한 저의 영화평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계백과 관창의 황산벌 전투 이야기는 민족의 유산입니다. 195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저 또래의 소년소녀들은 그 비장한 이야기를 통해서 애국심에 눈을 떴습니다. 국민 교육의 소재이기도 한 민족사의 소중한 추억을 우스개 소재로 써먹은 것을 비판한 단 한 사람의 기자가 저라면 쓸쓸한 역사입니다.
 
  신라가 당시의 세계최강제국(唐)을 한반도에서 밀어내고 달성한 삼국통일을 제가 옹호하는 것은, 최초의 민족통일국가 건설과 최초의 국민국가 건설은 같은 민족사적 정통성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신라통일의 부정은 대한민국 부정으로 直進(직진)하기 십상입니다.
 
  대한민국 건국을 분열정권 수립으로 보는 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2월말 기자 회견에서 “남북한이 지방정부가 되는 국가연합 방식으로 통일하되 수도는 개성으로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영토조항과 통일방안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사실상 북한정권의 연방제 적화통일방안의 핵심 내용을 수용한 놀라운 발언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月刊朝鮮 이외의 어느 언론도 대통령의 이 反헌법-反국가적 발언을 진지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한국 언론은 위기의 본질을 직시할 안목과 용기를 잃고 있습니다.
 
  盧정권이 계급적 증오심까지 드러내면서 국민을 분열시켜 법치국가를 해체 위기로까지 몰아가고 있는 그 본질적 위험성을 언론은 애써 외면해왔습니다. 야당도 선거법 위반 정도의 피상적 문제의식으로써 탄핵의결을 관철했다가 ‘사소한 것으로 대통령을 밀어내려 한다’는 반발에 부딪쳤습니다.
 
  김성현 기자의 비판 중 상당 부분은 제가 한국의 상황을 본질적으로 인식하고 정확한 용어로써 전달하려고 하는 데 대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시민운동가 같다고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정확한 말쓰기’일 뿐입니다.
 
  저는 安秉勳 부사장이 퇴임사에서 한 말을 기억합니다.
 
  “언론의 자유는 기자 개개인이 지켜내는 것이다.”
 
  “2+2는 4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선동적 권력으로부터 위협당할 때 기자는 폭력적 권력 앞에서 그러했듯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處變不驚(처변불경)-놀라지 말고 겁먹지 말고 눈감지 말고 우리도 무기를 듭시다. 사실의 무기를!
 
  조갑제ㆍ월간조선 편집장



2004-04-04 19:18:45
1101 번 읽음
  총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이인향 '04.4.4 10:27 PM 신고
    :-)*조갑제씨는 글을 참 잘쓰는군요. 수구신문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이런양반에 말에 반박할만한 논리를 갖추려면 많은 공부가 있어야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댓글에댓글
  2. 2. 여인석 '04.4.5 2:15 PM 신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군요. 조선일보가 민족지라니, 친일했던 조선일보를 민족지라니.. 쩝.. 조갑제 이 분도 별로 군요 생각 하시는 게 자기하고 맞지 않으면 친북인사라니.. 말이 안됩니다. 왜 수구 세력인데요. 한마디로 지식인이지 지자는 아니군요. ↓댓글에댓글
  3. 3. 여인석 '04.4.5 2:16 PM 신고
    :-)*흠 한마디로 아는 것만 많았지, 생각의 틀을 못 깼군요. 그래서는 안되지요. 지금도 조.중.동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사실 왜곡 유포 하고 있지 않나요? 그런 일들이 있는 가운데 편집 국장이라면 중간에 서 있다고 하겠지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저런 사람들이 우리 ↓댓글에댓글
  4. 4. 여인석 '04.4.5 2:17 PM 신고
    :-)*지도층 인사라니.. 말이 안나옵니다. 프랑스 같았다면 벌써 폐간이 되도 되었을 것을 정말 안타깝습니다. ↓댓글에댓글
  5. 5. 이연준 '04.4.6 6:43 AM 신고
    :-)*그들과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공감할수 있는 글이다. 김정일이 진보 개혁이라니...또한 우리나라의 진보 개혁세력을 북한정권과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하는것 자체가 우습다. 그들이 보기에 이는 2+2=4 이지만 내가 보기에 2+3=4라고 우기는것 같다. ↓댓글에댓글
  6. 6. 김인규 '04.4.6 9:59 AM 신고
    :-)*조선일보가 일제시대때에 살아남을 려면 어떻게 해야 살아 남아겠는가
    최소한 살아서 국민들을 대변할려면 그당시에 집권자들의 미운털이 박히는것은
    어쩔수 없더라도 폐간 까지는 되지 않도록 그들의 입맛에 맞게 해주는 부분이
    필요했을 거란 ↓댓글에댓글
  7. 7. 최진용 '04.4.6 7:10 PM 신고
    :-)*조갑제는 친일군인출신의 박정희 군부쿠테타를 혁명으로 칭송하는 사람으로서 최근 쿠테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인물입니다. 그가 말하는 '비국민'이란 '매국노'의 일본식 표현으로서 그가 얼마나 일본 군국주의식 사고방식에 쩌들어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댓글에댓글
  8. 8. 최진용 '04.4.6 7:14 PM 신고
    :-)*노무현 대통령에대한 탄핵 역시 그가 '멍청한' 조순형을 대통령 해준다고 '선동'하여 벌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사형수 이야기를 써서 심금을 울려주던 젊은 시절의 조갑제는 간데없고 이제 늙은 추악한 만 남아서 시대를 저주하는 정신병적 행태를 반복하는 그가 불쌍해 ↓댓글에댓글
  9. 9. 엄동열 '04.4.9 12:44 AM 신고
    :-)*이인향님 말 처럼 반박이 힘들겠네요. 논리가 통하지 않는 괘변에 대해 논쟁하는 것처럼 힘든 게 없으니까요...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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