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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론자들의 사기극(2)-출처 스포츠서울

 

서구의 과열된 애견문화가 확산된 배경에는 인간에 대한 환멸과 회의에 기저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인간 사이의 대화와 신뢰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서구문명의 심각한 좌절이 그 돌파구로서 개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선과 명상으로 대변되는 동양문화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도 결국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개와 대화를 나눈다는 파리지앵의 모습을 전해주는 어느 특파원의 기사를 접하고 나면 서구사회의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읽을 수 있다. 개는 서구인에게 한갓 장신구에 불과하며 인간의 고독과 회의를 가려주는 훌륭한 의상인 셈이다.

한편 파리에서 버려지는 개의 숫자는 일년에 수십만 마리라고 한다. 미국은 20년 전까지 버려린 개가 연간 1,800만 마리였고, 이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매년 1억2천만 달러를 소비하였다. 이런 개들은 기르다 주인이 싫어서 버린 것들이 대부분으로, 돌아다니며 쓰레기 뒤지고, 더러운 곳에서 생활하여 병을 옮기게 되므로 잡아서 박멸하게 된다. 지금은 연간 300만마리에서 750만마리를, 안락사시켜서 일부 매장하거나 동물 사료, 화장품 원료, 비료 등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전세계의 심각한 질병으로 우려되는 광우병 파동은 개 등을 잡아서 만든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주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동물보호론자들은 대한민국에서 개를 잡는 것은 도살이고, 서양에서 안락사시키는 것은 인도적인 행위라고 한다. 죽고 싶은 개가 어디 있겠는가.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개를 기르다 버린 인간의 더러운 욕망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그저 죽는 순간에 대한 개의 권리를 논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천만마리의 개를 죽이면서도 그 수십분의 일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그들의 껌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실은 서양 언론과 동물보호론자들의 배후에는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 우선 그들의 쇠고기 중심주의다. 서양은 대규모 축산산업을 유지하며 쇠고기 소비를 늘려야 하는데 개고기 식용은 그에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애완 동물 사료 회사들의 막강한 입김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개고기는 소, 닭, 돼지에 이은 네 번째로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소득이 늘고 생활이 안정화됨에 따라 애완산업은 더욱 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 개를 먹지 않고 기르는데 초점을 맞추면 시장의 크기는 더욱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서구의 동물보호론은 그럴듯한 명분이며 실은 자본주의에 근거한 산업 공세에 불과하다. 19세기 프랑스 선교사 달레가 쓴 조선교회사에는 “조선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는 개고기다. 선교사들도 모두 그 맛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구절이 있다. 훌륭한 관광상품이자 토착상품을 혐오식품으로 둔갑시킨 것은 것은 자국문화에 대한 비하에서 온 것이다.

단백질 식품으로 서양에는 치즈가 있고, 동양에는 두부가 있다. 치즈는 우유 단백질을 뽑아내어 발효시킨 것이고, 두부는 콩의 단백질을 뽑아 낸 것이다. 치즈를 만들 때 우유 단백질을 침전시키려고 송아지 위의 레닌(rennin, chymosin)이라는 효소를 얻기 위해 서양에서는 연간 2천만 마리의 송아지를 도살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바닷물에서 얻는 간수로 콩단백질을 간단히 침전시켜서 두부를 얻고 있다. 어느 편이 더 인간적이고 환경친화적인가?

그리고 동물보호론이 탄력을 받고 정당성을 뒷받침받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에 대한 예우가 필요하다. 세계식량계획은 세계는 현재 인구대비 110%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지만 효율적이지 못한 공급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절반 이상과 아프가니스탄과 방글라데시, 캄보디아와 북한, 몽골 그리고 중남미의 과테말라 등에서 지구촌 인구의 14%인 8억 3,000만명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구온난화 등으로 가뭄지역이 늘어나는 추세가 계속되면 앞으로 20년 안에 세계 인구의 절반이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서구에서 개가 개 이상의 호강을 누린다고 해서 그것을 세계화, 보편화 시킨다는 건 역으로 인간에 대한 경시이자 서구자본주의에 놀아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주류(主流) 경제학에 도전해, 그 공로로 작년 유럽 진화적 정치경제학회(EAEPE)가 주는 뮈르달상(賞)을 받았다. 장 교수는 2002년 말 영국에서 출간한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로 뮈르달상을 받았다. 이 책에서 그는 과연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유하게 됐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장 교수가 내린 결론은 ‘선진국은 지금 그들이 개발도상국에 하지 말라고 권하는 정책과 제도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문명=서구적인 것이라는 공식은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우열 관계를 형성시켜 왔으며,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서구인들의 척도가 어떻게 비서구사회의 삶과 문화를 파괴해 왔는가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개 숭배에 우리가 동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사대주의 습성으로 외국의 비판에 신경을 너무 많이 쓴다. 가끔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한귀로 흘려보낼 필요도 있는데 말이다. 한국인들은 한국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가끔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개고기 논쟁은 단순히 개고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화와 주체성에 대한 도전이자 시험이다. 개고기를 합법적으로 식용화하고 정정당당하게 홍보하는 것이 개고기 논쟁을 종식시키는 길일 것이다. 

 

참고자료

한국인과 개고기 : 안용근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 : 고광석

개고기와 문화제국주의 : 주강현

슬픈열대 : 레비 스트로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저는 개인적으로 윗글에 상당히 공감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2004-04-01 13:01:19
885 번 읽음
  총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심경용 '04.4.2 2:03 PM 신고
    :-)*길어서 그냥 지나갔었는데, 읽어보니, 상당히 내실있는 글이군요.
    요점은, 선진국의 경제제국주의적 목적과,
    한국인의 문화사대주의가 맞물려,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한국인의 주체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얘기인데, 적극 동의합니다. ↓댓글에댓글
  2. 2. 이호철 '04.4.3 8:49 AM 신고
    :-)*전적으로 동의 하오. 왜 한국인은 스스로를 비하시키는가? 왜 자꾸 서양을 사대하는가? 제발 자존(自尊)하기 바란다. ↓댓글에댓글
  3. 3. 박철영 '04.4.3 2:03 PM 신고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예전 시골에 사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우리에게 개보다는 소가 더 친숙한 동물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도 바로 방 옆에 외양간을 두고 살 정도였죠. 친숙함으로 따진다면 개는 소에 비할바가 아니었습니다. ↓댓글에댓글
  4. 4. 이선재 '04.4.5 9:02 PM 신고
    :-)*모든병의 기본시초는 개와 원숭이에게 있다고 방송하는것 들었는데... ↓댓글에댓글
  5. 5. 원종태 '04.4.6 9:41 AM 신고
    :-D*출처가 스포츠서울이라는게 안 믿겨지는 글이군요...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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