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반탄'과 '찬탄'의 행우들을 티브이에서 보시는 이 햏의 아버님께서 한숨을 휴~ 내쉬며 걱정을 하오. 마치 해방직후 찬탁과 반탁의 소용돌이를 보는 것 같다며 늘상 안절부절 걱정이시요.
저는 역사고 나발이고, 정치고 뭐고 이런거 별 관심이 없었고, 앞으로도 나는 그 딴것에 관심을 갖고 살지 않으려 마음을 먹은 사람이오. 그러나 아버님의 걱정과 한숨이 결국 나를 움직이고 말았소. 물론 내가 '움직인다'라는 말은 뭔가 특별하게 선택을 하여 역사에 동참하자는 뭐 그딴 사명의식이 아니라 과연 '반탄'과 '찬탄'이 뭐가 다른가를 분석해야 하는 일이오. 하여,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등등을 주욱 읽으면서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더욱더 나의 돌대가리는 오리무중이라오.
저넘 이야길 들으면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고 요넘 이야길 들으면 이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소. 나는 2년전 수능고사에서도 수학은 무조건 '찍기'에 운을 걸었다오. 그런 내가 고차원의 방정식 보다도 더 어려운 이 정국의 옳고 그름을 어찌 판단을 한단 말이오.
그래서 책상위에서 이런저런것들을 읽고 분석하여 판단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고 나 같은 돌대가리 햏은 어쩔 수 없이 몸이 수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오. 이따위를 좋은 말로 몸소 '실천行'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겠지만, 사실은 이거 멍청한 사람에게 이르는 말이라오.
하여, 나는 지지난주 20일 토요일과 지난주 27일 토요일을 광화문에 나가서 '찬탄'과 '반탄' 집회를 몸소 실천했소이다. 이번 실천행에서 가능하면 나는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소.
양쪽을 보자면 집회 참가자 수는 절대수학이라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인간의 역사를 보자면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불의를 말하는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적을 때가 종종 있었지 않소?
그리고 세련된 집회 매너도 그렇게 중요한 변별력의 증거는 아니라고 보오. 세련된 것으로 치자면 예수보다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훨씬 더 세련의 극치를 보이지 않소?
무대에 대한 집중도를 보자면 양쪽 모두 악을 버럭버럭 질러대며 막상막하였소.
그런데 딱 한가지 틀린점이 있었소이다. '반탄'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많이 보였소 그리고 집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도 구호가 적힌 찌라시나 스티카를 가방이나 옷에 부착한체 자랑스럽게 지하철을 타더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반탄'집회에 참석하는 일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자신의 아들 딸들에게도 직접 보여주었소. 그리고 다른사람들에게도 자신이 이 집회에 참석하는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알리는 것이오. 그리고 자신들이 사용하던 구호 찌라시도 대부분 정성껏 접어서 가방에 넣거나 품에 넣어서 가져가더란 말이오. 그들의 표정으로 볼 때,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자신이 역사의 한 복판에 함께 했다라는 징표로써 간수를 할 요량이었던 것 같소.
허나, '찬탄'쪽은 집회가 끝나자 마자 둘러쓰고 있던 구호 어깨띠나 머리띠를 얼른 벗어서 던져버리고 자신들이 사용했던 구호 찌라시도 재빨리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더란 말이오.
거 참! 그래서 이 돌대가리 햏이 딱 한마디로 요설을 하건대, '반탄'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식에게 자신의 행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찬탄'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기 자식은 커녕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행우를 부끄러워 하더이다.
부끄러운 짓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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