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은 총선 승부를 가름하는 ‘키 포인트’다. 인구가 많은 만큼, 의석수도 많다. 서울 48, 인천 12, 경기 49석. 전체 지역구 의석(243석)의 44.9%인 109석에 이른다.
유권자의 입맛 맞추기도 까다롭다. 특정 정당에 몰아주지 않고, 지역주의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바꿔 말하면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얘기다. 1,000~2,000표 차이로 승패가 갈라지는 것은 예사다. 16대 총선에서 경기 광주의 박혁규 의원(한나라당)은 민주당 문학진 후보를 단 3표차로 꺾기도 했다.
그런 수도권도 이번엔 사정이 달라졌다. 거센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의 우세가 계속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40% 이상의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야당후보들 어려움 토로-
지난 18일 오후 9시,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 중학교 동창 사이라는 두 회사원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금융계통에 근무한다는 안모씨(43·서울 상계동)는 탄핵 얘기가 나오자 대뜸 “미친 놈들이 한 짓이지”라고 내뱉었다. “교통신호를 위반했는데 살인죄 저지른 것처럼 처벌할 수 있느냐”고도 했다.
그는 “평소에 정치 얘기하면 그만하라고 잔소리하던 아내가 이번에는 나보다 더 흥분한다”면서 “대선 때 나는 권영길 후보, 아내는 이회창 후보 찍었는데 이번에는 둘 다 열린우리당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석했던 이모씨(43·경기 분당)는 “국회의원이 대통령 탄핵하는 건 ‘아버지, 그만두세요’ 하는 격인데, 그렇다면 최소한 형, 누나, 동생들한테는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야당을 꼬집었다.
탄핵 역풍은 정치 무관심층에 ‘한표의 의미’를 체감케 한 것 같다. 특히 30~40대에 미친 영향이 커 보인다.
방송작가 황영옥씨(35·서울 목동)는 “야당 의원들을 보면서, 내가 지난번 총선 때 투표를 안해서 저런 의원들이 뽑혔구나 싶었다. 이번에는 꼭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김연학씨(33·경기 안양)는 “탄핵을 계기로 야당의 힘이, 기존 정치인들의 힘이 생각보다 훨씬 세다는 걸 확인했다”면서 “누가 좋아서가 아니라 누가 덜 미워서라도 한표를 찍겠다”고 했다.
상업에 종사하는 박영환씨(45·경기 수원)도 “총선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선거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민주당 후보들의 고충은 만만찮을 수밖에 없다. “나가서 돌아다닐 수가 없다. 차라리 얼굴 안 보고 전화 통화하는 편이 낫다”(한나라당 노원을 권영진) “유권자들의 눈빛이 냉소로 가득차 있다”(민주당 은평갑 조동회) “명함 주기가 무섭다. 찢어버리니까”(민주당 안산단원갑 민영삼)….
반면 열린우리당에는 화색이 돈다. 안영근 의원(인천 남을)은 “(탄핵안 의결 때) 다친 데 없느냐, 몸은 괜찮으냐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강남벨트 큰변화 못느껴-
하지만 지역별로는 상당한 편차가 있다. 서울 강남 벨트는 탄핵 바람에도 큰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
대치동에 사는 최상현씨(27·대학원생)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의원이 맘대로 탄핵하느냐고 하는데 국회의원도 국민이 뽑은 것 아니냐”면서 “탄핵 때문에 지지후보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대별로도 온도차가 읽힌다. 20~40대는 탄핵 반대가 압도적이지만, 50대 이상에선 다르다.
안양역에서 만난 전모씨(68)는 “대통령이 국민 전체를 아우를 생각은 안하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게 잘하는 일이냐”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했다. 회사원 양경석씨(53·경기 분당)도 “인물면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비교우위에 있는 만큼,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30대 회사원은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은 ‘탄핵 잘했다. 노무현 대통령 같은 젊은 사람들이 정권 잡는 건 싫다’고 한다. 반면 젊은 세대는 탄핵을 철회해야 한다는 쪽이 많다”고 세대별 차이를 설명했다.
어려운 경제상황 탓에 탄핵이나 총선에는 별 관심없다는 사람들도 적잖았다. 인천의 전자부품회사에서 일하는 정호영씨(50)는 “탄핵을 갖고 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따져서 뭘 하느냐”고 입을 뗐다. 그는 “1년 넘게 잔업이 없어 어젯밤에도 집사람하고 부업거리라도 찾아보자고 얘기했는데…”라며 담배를 문 채 한숨을 쉬는 모습이었다.
수원에 사는 사업가 김순용씨(44)도 마찬가지였다. “경제가 엉망인데 국회의원들이 정쟁만 벌이고 있어 환멸스럽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런 국회의원들을 뽑아 무엇을 하겠느냐”며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전국부/시민기자 이상명(수원YMCA 시민사회개발부장)·위남욱(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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