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얘기지만 말을 열기 위해 뒷북 한 번 치련다.
한나라당에서 전여옥 씨를 대변인으로 내정했단다. 동시에 당선권 내의 비례후보 공천도 보장이란다. 공식적으로는 16일 한나라당사에 방문하여 입당한 후 공식 임명될 거라고 한다.
한나라당이 민심을 얼마나 놓치고 있는가를 여기서 다시 한 번 본다. 바로 며칠 전에 일어난 해프닝을 보자.
탄핵 당일인 3월 12일, SBS는 특집으로 <이것이 여론이다>라는 대토론을 벌였다. 여기 전여옥 씨 나와서 여러 건 올렸다. 시청자들 분노 격렬했다. SBS 융단 폭격 당했다.
여기에 애꿎은 유탄을 맞은 것이 YTN. 전여옥 씨 발언 동안 SBS에서 자막으로 내보낸 약력에 YTN 제작부주간을 역임했다는 내용이 나온 것이다. YTN, 지은 죄도 없이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네티즌의 부주의를 탓할 수도 있겠으나 SBS라는 굴지의 공중파 방송의 객관적 데이터니만큼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YTN을 수준미달이라거나 YTN에게 실망했다,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정도는 양반이고 육두문자도 많았다.
YTN, 전여옥 씨는 YTN과 관계없다고 해명하며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전여옥 씨는 MY TV 제작부주간이었던 적이 있을 뿐 YTN에 몸 담았던 적은 없다는 말이었다. SBS의 오기였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YTN엔 씨 전여옥 관련 비난이 간간이 올라오고 있다.
YTN은 이 일로 인해 공정성에 막심한 피해를 입어 이미지 회복을 위해 SBS에 정정 보도 요구와 함께 강력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YTN한텐 안 됐지만 나 이 사건 보고 굉장히 웃었다. 자사에 몸 담았다는 오해만으로도 명예의 손상을 우려해야 될 정도인 전여옥 씨, 갈 데까지 갔다, 더 이상 비빌 데도 없을 정도로 입지가 좁아지고 있으니 조선 밥줄 꽉 틀어잡고 있어야겠구나 생각하며 웃었다.
지금, 어느 언론이, 자사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오해 때문에 막심한 피해를 입고 이미지가 손상되었다고 정정 보도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는 마당에, 어느 당은 그 사람을 당의 얼굴인 대변인 자리에 앉힌다고 한다. 이 아이러니, 난 정말 신나게 웃었다. 여기서 대변은 똥이 아닐진대 왜 그 더러운 걸 처덕처덕 얼굴에 처바르고 있을까.
여기서 한나라당의 브레인이라는 양반들과 여론이 얼마나 유리됐는지, 그들이 얼마나 그들만의 패러다임 속에 갇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반면, 사회 일각에 그런 전여옥 씨를 환영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엄연히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은 전여옥 씨를 데려옴으로써 또 한 번 타격을 받을 수 있음을 몰랐을까(더 받을 타격이 있다면)? 오히려 부동층을 유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 지지자들을 더욱 결집하기 위해서 전여옥 씨를 데려온 것일 수 있다.
언젠가 모 TV 토론에서(국정원 인사 관련 토론이었을 것이다) 홍준표 의원이 실컷 헛소리를 해대는 것을 보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 적이 있다. 다음날 일터에 나왔더니 계장이 하는 말이, 다들 여론 무서워 움츠러 드는데 홍준표야말로 소신 있게 무섭게 상대방을 찌르고 나가니 아무 말을 못하더라는 것이다. 내가 보는 토론과 계장이 보는 토론은 그렇게 달랐다. 파병 관련 토론에서 송영선 소장의 위세를 보고 혀를 내두르며 비웃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어쩌면, 토론이든 무어든 이미 입장을 확고부동하게 정하고 우리편 얼마나 잘하나, 남의 편 얼마나 삽질하나를 스포츠 관람하듯 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 홍준표의, 송영선의, 전여옥의 삽질은 날카로운 추궁이요, 헛소리는 추상 같은 꾸짖음으로 비칠지 모른다. 우리가 보기에 조용한 말투로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는 논객들의 목소리는 할말 없으니 기가 죽어 버벅대고 있는 머저리로서 비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
SBS 대토론이 있은 다음 날, 나는 또 누군가로부터 전여옥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비아냥이 아닌 진정으로. 그 사람은 탄핵에는 반대하던 사람이다. 아니, 탄핵을 불안해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오늘 나한테 한 말은, 기왕 탄핵됐으니 뒤집어 버리자였다. 탄핵 자체에는 불안해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바 기정 사실로 하고 새 판 짜자는 사람 의외로 많다.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탄핵도 불사하고 대통령 끌어내리자는 사람도 꽤 있다. 이들에게 전여옥은 어떻게 비쳤을까. 한민자 3당 모두 여론이 두려워 움츠리고 있고 내보낸다는 사람도 조심조심 눈치 살피고 있는데 홀로 나서 여론을 호도하는 무리를 질타하는 여장부로 보이지 않았을까?
한나라당이 전여옥을 데려오기로 한 것은 패착이면서 동시에 승부수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현재 한나라당의 위기를 안타까워하는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들, 그리고 탄핵 자체에는 반대했지만 기왕 일어난 일이라면 탄핵이 다시 뒤집히길 바라지는 않는 사람들(한민자가 그렇게 외치는 흥분을 버리고 냉정해진 선량한 국민들)을 전여옥이라는 키워드로 결집시키는 것이다. 전여옥이 싫어 한나라당을 버릴 사람은 대부분 이미 한나라당을 버린 지 오래다. 그런 소수의 이탈보단 현재 확보한 지지자들의 확실한 결속이 먼저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나는 우리가 전여옥을 너무 우습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이미 한나라당 민주당 우습게 보다 뒤통수 얻어 맞아도 크게 얻어맞지 않았나. 바보이면서 약골이면 두려울 것 없다. 하지만 바보이면서 강골이라면 비웃기보다는 경계해야 맞다. 전여옥은 유력 언론의 칼럼니스트이며 이제는 제1야당의 대변인이다. 그녀는 제 정신이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 개개인보다는 강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를 인간 취급도 하지 않지만, 그녀의 말에 감탄하고 감동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우리, 적을 경시하다 기습을 당하기보다는 우스워도 긴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