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양키들이 다시 1980년 5월사태처럼, 한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글을 썼을 때, 제법 많은 사람들의 「소설은 소설로 그쳐야 된다」라던가 「억측이다」
..등등 반대의견이 댓글로 달렸더랬는데;;
정말이에요.
양키들은 진짜 지네들한테 거슬리면 대통령이고 각료고, UN군(본질과 실체는 米軍지아이)
무단투입해서 멀쩡한 독립국가의 정부를 때려 엎곤한답니다.
이라크나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이나 (실패했지만)베트남이나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만
그러는 게 아니라, "지금도" 바로 어제도 이딴 만행을 저지르고 있대요.
..라고나 할까,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에∼이, 설마. 미국은 우리의 오랜 맹방이고 친군데.. 헛소리야." ∼라고
굳이 애써 부정할 사람이 있다면;;
(이미 뼈속 깊이까지 유태인들의 꼬붕인, 양키들의 발싸게로서의 세뇌가 되어 있다고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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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반군의 수도 진입이 임박한 가운데 국제적 압력에 의해 대통령직 사임 후 망명한 것으로 보도됐던 아리스티드 아이티 대통령이 3월 1일 오전(미국시간), 미국 맥신 워터스 하원의원에게 비밀리 숨겨놓은 휴대전화를 이용, 전화를 걸어 "나는 대통령직을 사임하지 않았다. 나는 무장을 한 군인들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밝혔다.
아리스티드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한 워터스 하원의원은 Democracy Now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히고 미국 정부에게 진실을 규명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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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에 빠진 아이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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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democracyn | 워터스 위원은 인터뷰에서 아리스티드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현재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르네상스 궁전이라고 불리는 곳에 감금되어 있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그곳이 호텔인지 일반 빌딩인지 알 수 없다고 했으며 현재 무장한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밝혔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미국 고위 외교관이 한밤중에 자택에 찾아와 즉각 아이티를 떠날 것을 요구하면서 "미군 해병대와 기 필리프( 무장반군 지도자)가 곧 수도에 입성할 것이다. 당신은 당장 아이티를 떠나야 한다. 떠나지 않으면 당신은 살해될 것이며 많은 아이티인들이 죽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 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나 아리스티드와 그의 부인을 비행기에 강제적으로 싣고 캐러비안의 안티구아에 있는 군사 기지에 잠시 착륙했다. 그리고 수시간 비행한 후 현재 장소인 중앙 아프리카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 지역은 프랑스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이며 프랑스와 미국 군인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고 한다.
15분 남짓 다급하게 이루어진 전화 통화에서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침통한 목소리로 "이는 미국이 주도한 불법적 쿠데타이다. 나는 납치됐다. 진실을 세상에 알려달라"고 호소했다고 워터스 의원은 전했다.
또한 트랜스 아메리카 설립자이며 아라스티드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랜달 로빈슨도 Democracy Now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아리스티드 대통령에게서 "나는 사임을 한 것이 아니다. 미국에 의한 쿠데타가 완성되었다. 나는 무장 군인들에 의해 납치되었다"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고 확인했다.
아리스티드 대통령과 매일 수차례 전화 통화를 해왔던 로빈슨은 지난주 토요일부터 갑자기 대통령과의 모든 통신이 두절됐으며 휴대용 전화로 한 번 연락받은 외에는 아무런 통신 방법이 없었다고 밝혔다.
워터스 의원은 미국 정부가 또 다시 합법적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쿠데다를 통해 축출한 것을 강력히 비난하며 그 배경 세력으로 미국 국무성을 지명했다. 워터스 의원은 아이티의 상황을 수년 전 베네주엘라의 차베즈 대통령을 실각시키려고 시도한 쿠데타와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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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티드는 어떤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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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각한 아이티 아리스티드 대통령 |
ⓒhaiti.org | 좌파적 이념과 해방신학에 바탕을 둔 민중민주주의를 주창한 아리스티드는 1991년 압도적 지지로 아이티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집권 8개월만에 군사 쿠데타에 의해 대통력직에서 쫓겨나 망명 길에 오르게 된다.
아리스티드가 떠난 후 아이티는 잔혹한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 급격한 혼란에 빠졌다. 1994년 클린턴 미국 정부와 UN은 아이티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합법적 대통령으로 인정받는 아리스티드를 대통령직에 복귀시켰다. 그러나 돌아온 아리스티드는 전과 많이 바뀌어 있었다. 급진적 개혁 정책을 펼치던 이전의 모습에서 후퇴한 것이다.
아리스티드는 대통령직 복귀를 위해 클린턴 정부와의 타협을 통해 전과 다르게 국제 자본과 기업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펼 것을 약속했으며 이 때문에 자신의 지지 기반이던 노동조합과 학생들과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티드는 미국과 압력과 부유층의 저항 아래서 극심한 이이티의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 노력을 했으며 최저 임금을 올리고 빈민층을 위한 의료복지 시설을 증가시켜 가난한 아이티 민중 사이에서는 높은 인기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1995년 연속 대통령직을 금지하는 아이티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을 물러난 후, 2000년에 아리스티드는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 선거에 승리,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그러나 2001년 부시 정부가 집권 후, 아리스티드의 좌파 성향에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던 미국 정부는 아이티에 가혹한 경제 제재 조치를 취했으며 각종 국제 경제기구에도 압력을 가하여 아이티에 대한 국제원조 및 차관을 막았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암암리에 아리스티드 반대파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며 아리스티드 흔들기에 나선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아리스티드 정권이 문제에 빠진 것은 미국의 경제 제재와 국제금융기관의 차관 봉쇄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경제 제재로 인해 이미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아이티 내의 경제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이는 아리스티드의 지지도가 하락하는 큰 요인이 되었다. 또한 아이티 군대를 해산한 후 무장 민병대 조직을 통해 반대 세력을 탄압한 것도 실정으로 꼽히고 있다.
무장 반군 세력은 2000년 의회선거가 부정이며 이를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함의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티에서 2000년 선거를 관찰한 국제 기관과 미국 선거 감시 그룹은 2000년 의회 선거가 합법적이고 큰 문제가 없었다고 보고했다.
아리스티드는 반대파가 부정 선거라고 주장한 8개 상원의원 선거구에서 재선거를 실시할 것을 제안하며 여러 번 협상을 시도했으나 선거에서 10%가 약간 넘는 득표를 얻은 반대파는 아리스티드의 무조건적인 사임만을 요구하며 모든 협상을 거부해 왔었다. / 박지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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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은 //www.democracynow.org/ 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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