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 LG`를 외치는 재계 2위 LG그룹에 왜 자꾸 위기가 엄습하는 것일까.전자, 화학등 주력 제조업체들의 경쟁력은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고 수익구조도 개선됐는데 정작 그룹은 재계 2위의 체면을 훼손당한지 오래다.
멀리는 지난 2000년말 비동기식 IMT사업자 탈락에서부터 하나로통신 경영권 확보실패, 불법대선자금 제공 첫번째 포착에 이어 LG카드(032710) 사태 등. 10년만에 하나쯤 나올까 말까하는 초대형 경영실패나 위기가 LG한테는 불과 4년사이 계속 터지고 있다. LG의 진짜 실력이 이것밖에 안되는 걸까.
문제는 이런 실패와 위기 대부분을 그룹 최고경영진이 자초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근본적 반성과 최고위층 개편 없이는 유사 위기가 또 터질 수 있어 심각성이 더하다는 지적이다.
◇LG 실패는 최고위층 판단 잘못LG가 위기를 자초한다는 지적의 가장 큰 이유는 `컨텐젼시 플랜(비상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2000년말 비동기식 IMT 사업자 선정때의 일이다. "만일 실패할 경우 LG가 통신사업을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시 강유식 구조조정본부장은 "실패할 리 없기 때문에 떨어지고 난 뒤에 어떻게 할지는 생각도 안하고 있다. LG가 꼭 될 것이다"고 말했다.
당시는 LG의 자신감 정도로만 비춰졌고 뭔가 대책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 정도로 넘어갔다. 하지만 정작 LG가 탈락한 것으로 발표됐을때 LG는 후속 대책이 전혀 없었다. 다른 투자를 통해 통신사업을 계속 키울지, 아예 통신사업을 접을지 내부적으로 전혀 방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때 LG는 "어떻게 할지 판단을 유보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정통부가 동기식 IMT사업을 하라고 강력히 요구하자 하기싫다던 동기식 IMT에 몸을 맡겼다.
이런 식의 컨텐젼시 플랜 부재는 이후 하나로통신 경영권 분쟁때도 재현됐다. "하나로통신측보다 소액주주 위임장을 더 받았다. 절대 우리가 질 수 없는 게임이다"고 큰소리쳤다가 대패했는데 그다음 대책이 전혀 없었다. 며칠뒤 하나로통신 주식을 팔겠다고 나왔다.
LG카드 때는 오히려 금감원을 통한 고공플레이로 채권단을 누르면서 미소짓다가 "도대체 아쉬운데가 누구냐"며 채권단의 원성과 불신을 샀다. 채권단의 반발을 자초, 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자 다시 금감원에 조정을 호소할 뿐이었다.
LG 내부의 한 관계자는 "최고수뇌부는 항상 낙관적인 전망할 뿐 차선, 차악, 최악 시나리오를 전혀 상정하지 않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고 허둥지둥한다"고 비판했다. 시나리오 경영을 하지 않으니 컨텐젼시 플랜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실패의 대부분이 상황에 대한 판단미스 탓이다. 항상 낙관적인 상황만 상정하고, 주위의 냉정한 조언은 귀담아 듣기 보다는 LG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그냥 간다는 지적도 있다.
LG관계자는 "아래에서 부정적인 보고서를 올리면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보다는 `우리만 잘하면 그런 일 안 생긴다`는 일방적인 결론만 메아리되어 내려온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최고위층은 외부 환경만 탓할 뿐이고 실패를 너무 쉽게 잊는다는 지적이다.
◇극복하지 못한 온정주의, 문책이 없다구본무 회장이 "일등 LG"를 주창하고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일등이 되라"고 독려하지만 LG는 여전히 일등 기업에선 반드시 없어져야할 `온정주의`가 남아있다.
LG가 맞은 실패와 위기가 재계 1위 삼성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구조본 감사팀의 감사로 관련책임자를 모두 문책돼 회사를 떠나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LG는 문책이 전혀 없다. 삼성 같으면 철저한 책임 규명과 문책으로 제2의 실패를 막았을 테지만 LG는 책임지고 물러난 최고수뇌부는 하나도 없다.
비동기 IMT사업권 획득 실패 당시, 그룹내에서는 "이번의 경우는 사업권 확보를 추진했던 인사들이 문책되어야 한다"는 내부여론이 비등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추진했던 인사들은 다 원래 소속으로 원대복귀했고 사업권 획득 실패에 대한 문책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 LG카드 사태로 구본부 회장의 개인 주식까지 담보로 내놓는등 망신을 당했는데 그룹 수뇌부는 뼈저린 반성이나 자책을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채권단 마저 불쾌하게 만드는 최고위층의 뻣뻣한 자세는 채권단의 비협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LG관계자는 "채권단이 어렵게 지원을 약속해줬을 때 일일이 채권단을 찾아가 사의를 표시했어야 했다"며 "금감원하고만 협상하고 금감원이 채권단을 알아서 설득하라는 식으로 외부에 비쳐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협상에 대해 질책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LG카드 문제는 무엇보다 구조조정본부 최고위층의 판단 잘못이 큰데 이에 대한 문책이 이어질지 지켜볼 대목이다.
◇시장이 알아주지 않아도 LG만 잘하면 된다?LG가 시장에 불신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이 뭘 바라는 지 모른다`는데 있다. 이는 지난 99년이후 대주주와 LG화학간 주식거래, LG전자의 데이콤 지원, 하나로통신 경영권 분쟁, LG카드 사태 등에서 흔히 목격됐다.
예를 들어 LG석유화학 주식을 LG화학이 대주주로부터 되사주다가 시장의 불신을 샀다. 대주주 지원으로 기업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이 노출됐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당시 LG고위층은 "장이 끝나고 나서 이 거래를 했어야 했는데 새어나간게 잘못이다. 누가 흘렸는지 찾아내라"고 엉뚱한 직원들만 탓했다. 가뜩이나 LG가 잦은 대주주와 회사간 주식거래로 시장의 불신을 사왔는데 이 경우도 시장에 이해를 구하는 자세 보다는 시장의 눈을 가리는데만 급급했던 것.
LG지주회사체제 출범도 이와 전혀 무관치는 않다. 당초 그룹내 "LG카드 문제를 해결하고 지주회사로 가자"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LG카드가 향후 그룹에 미칠 문제가 예사롭지 않아 LG카드를 매각한 후 지주회사체제로 가는게 그룹전체를 위해서 낫다는 의견이었다.
LG관계자는 "LG카드채가 20조원이 넘었는데 이는 그룹 전체 차입금의 절반이 넘는 것이어서 카드를 매각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LG는 `우리만 잘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인지 지주회사체제 출범을 먼저했다. 이 때문에 계열사들이 LG카드를 지원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었지만 그룹은 더욱 위기에 흔들렸다.
대주주가 지분을 담보로 내놓고 급기야 LG증권을 내놓으면서 금융업 전체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을 맞았다. 지주회사체제라는 방화벽으로 그룹 계열사들이 보호를 받았지만 그룹위상은 더욱 실추했고 방화벽과 무관한게 계열사 주가는 추락하고 있다.
LG의 다른 관계자는 "시장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시장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고 대응하려 하지 않고, 언젠가는 시장이 우리를 이해할 것이라는 막연한 감과 고집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LG가 다시 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지금처럼 회계 전문가 중심의 그룹 경영진을 개편, 보다 넓은 시야를 갖고 외부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일 줄 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구본무 회장이 직접 나서서 신상필벌의 원칙을 정립, 경영실패, 위기 대응실패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위에서부터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